
계산을 좀 해보니, 오늘은 우리 선조들의 고향 행성에서 '지구의 날'이라고 하는 기념일이더군요. 뜻깊은 날을 맞아 저희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중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매우 귀중한 전시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1세기 말엽 어느 젊은 여교사가 남긴 일기의 한 구절이지요.
'오늘 우리 반은 마을 변두리 숲으로 현장학습을 나갔다. 세상 사람 모두의 보금자리인 이 작고 푸른 행성을 위한 날을 맞아 나무를 심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도 바깥나들이를 즐겼다. 다행히 대기 오염 농도가 낮아 천식이 있는 아이들도 호흡기가 필요 없었다.'
'아이들이 지구의 날에 담긴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계속 늘어나고, 기온은 상승하고,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를 더럽히고 있지만, 그래도 인류의 앞날에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 '싱그러운 흙을 파내고 작은 묘목을 심을 때 아이들 얼굴에 떠오른 순수한 즐거움을 보니, 나 역시 희망을 품게 되었다.'
'늦지 않았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아직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우리를 잉태한 요람을 버리기라도 해야 할까?' '저 차디찬 어둠으로 몸을 내던져, 지금 주어진 이 행성처럼 소중한 보금자리를 찾기를 기도할까?' '그런 미래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울지, 나로선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알고 싶지도 않다.'
이 일기를 쓴 교사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릅니다. 방주선 함대가 출항하는 날까지 살아 있었다고 해도, 나이가 너무 많아 승선 인원으로 선정되지는 못했겠죠.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교사의 짤막한 글귀는 강렬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 선조들은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지구는 사라졌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교만과 욕심, 무관심이 고향을 영원히 망가뜨렸죠.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의 고향 Lidon도 지구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요? 우린 과거가 남긴 교훈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눈여겨보면 벌써 위험한 징후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더 손쓸 수 없게 되기 전에 이 경고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축복받은 땅마저 잃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