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 영원한 인류의 전사들
우주선의 강철 문이 닫힐 때 나는 날카로운 울림, 출항과 함께 가슴을 조여 오는 적막, 스쳐 지나가는 별 하나하나가 전하는 미묘한 신호…… 고향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여행자가 된다는 건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이 외롭고 고립된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줄 훈련 프로그램 따위는 없습니다. 벗을 수 없는 껍질처럼 어느새 여러분을 감싸게 되지요. 이미 많은 적이 고향을 위협하고 있는 데다, 임무 도중에 마주하게 될 미지의 위협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처음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 밖의 일은 지구에서 흔히 말했던 것처럼 기본적인 여건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든, 앞으로 마주할 위험에 대한 준비가 되진 못합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 계시겠죠. 그래서 여행자가 된 것일 테고요.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심지어 죽음의 공포조차 우리를 막지 못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인류의 생존입니다.
우리를 정의하는 건 무엇일까요? 우린 우리가 계승하는 유산의 가치와 그 유산이 품은 약속을 믿습니다. 반드시 살아남아 승리하겠다는 믿음이 우리의 DNA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Celestials이라는 적과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린 상상조차 어려운 현실과 맞서게 해주는 기개를 아직 잃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꺼지지 않는 믿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거악 앞에서 의연하게 맞서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내면의 힘을 일깨워 인류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행동의 연료로 삼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결속이야말로 인류의 생존을,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다짐을 하나로 묶는 끈입니다. Celestial과의 싸움에서 우리의 비밀 병기가 되죠. 물론, 많은 병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odus에서 살아남기란 기적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린 의식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압도적인 존재와 싸워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지요. 하지만 우린 부족한 육체적 힘과 기술을 용기와 신념, 헌신으로 채워 나갑니다. 적의 지성에는 정신으로 맞서고, 계산에는 본능으로 맞서며, 혁신에는 영감으로 앞서나갑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의 영적 결의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다짐이죠. 반대로 적의 목표는 철저히 실리적입니다. Celestial은 우리보다 수천 년 먼저 이곳에 도착했고, 훨씬 더 진화했다는 논리에 따라 우리를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우린 저들이 잊고 싶어 하는 불쾌한 과거의 잔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월함만으로 정신을 이길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여행자는 극히 드문 존재입니다. 지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감히 대적조차 할 수 없는 존재에게 맞서 싸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Celestials은 4만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상상조차 어려운 기술과 창의성, 압도적인 힘을 갖춘 상위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Celestial에게 인간은 이미 폐기된 과거의 유물에 불과합니다.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패권과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지요. 저들은 우리를 지나갈 역병으로,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Celestials은 기술의 제단에 인간성을 바치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우린 이 힘의 균형을 바꾸기 위해 싸웁니다. 더 지혜롭고, 더 자비롭고, 더 깊은 유대를 지닌 신문명을 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여행자는 저마다 서로 다른 고향에서 왔지만, 모두가 '첫 번째 원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 무엇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모든 것을 의심하라.' 이 철학은 우리 인간의 수많은 믿음이 시련을 맞이하고, 무가치하게 치부되는 이 우주에서 정신을 지켜주는 핵심입니다. 각기 다른 별에 흩어져 임무를 수행하며 살아가는 우리 여행자는 동료와 유대를 나눌 기회를 자주 얻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료입니다. 인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가 된 존재들입니다. 다른 이들 역시 저 멀리 어딘가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진정한 적, '시간 지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 묶입니다. 임무에 투입되는 시간은 단 몇 주에 불과하지만, 지구에선 수년이 지나갑니다. 시간은 늘어나고 왜곡되며, 고향을 변화시키고, 고향에 두고 온 소중한 이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변화를 선사합니다. 고향과의 유대는 점점 옅어지고, 관계는 시험대에 오르며, 가장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과의 이별은 곁을 떠나지 않는 고통이 됩니다. 우주의 끝없는 침묵 속에서 악몽은 거침없이 떠올라 마구잡이로 날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귀환했을 때 파괴되고 약탈당한 고향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값진 유물이나 기술, 지식을 손에 넣더라도…… 그 성과는 자리를 비운 동안 일어난 끔찍한 현실 앞에 쉽게 퇴색됩니다. 겉으론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영혼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행자의 삶이란 실력과 담력을 연료 삼아 불사르며 나아가는, 생존과 정신을 위한 영웅의 여정입니다(고도로 발전한 우리 후손들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자질이기도 하죠). 이 삶은 단순히 미지에 도전하는 용기를 뜻하지 않습니다. 대담한 심장과 굽히지 않는 의지에서 비롯된 항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인류의 전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탐험가이자, 보물 사냥꾼, 고고학자, 과학자, 그리고 엔지니어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막는 모든 장벽과 방해물을 끊임없이 밀어내는 개척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이자 아버지입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입니다. 친구이며 연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담담히 극복하는 법밖에 모릅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유산이며... 멸망 직전의 지구에서 탈출하며 함께 가져온, 절대 잃지 않을 유산입니다. 우린 조용히 사라지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여행자에게 있어 Exodus 임무는 언제나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향한 도약입니다. 다만 하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며칠일 뿐인 시간이, 고향에선 수십 년이 흐른다는 사실입니다. 시간 지연은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그 모든 순간, 귀환했을 때 흘리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은 우리의 서사이며, 여전히 인간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시간에게 빼앗긴 이 희생을 끝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생존과 멸종을 가르는 인류 최후의 전선에서 싸우는 전사들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수많은 정치적 격변, 문화 혁명, 전쟁을 견뎌냈습니다. 혹시 모르죠. 언젠가 우리 인류에게도 독립의 날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여행자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치른 시간 너머의 희생을 기리고, 축하하는 날이 말이지요.
그리고 그게 바로... 아이야, 여행자의 삶이란다. 우린 시간의 바깥에서 존재해. 스스로 선택한 대가지.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가 센타우리의 역사책 속에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