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됐지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Torrance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전부 수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비살상 진압 장비를 갖춘 보안 인력들.
Jurgen Barrendown은 일부러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코냑과 약물, Marietta라는 여자가 Jurgen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일이 끝난 뒤, Jurgen은 Marietta에게 값을 치르고 경비원을 시켜 함선 밖으로 안내하게 했다. 어차피 Marietta는 초대한 손님이 아니었으니까.
Jurgen이 입장하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른아홉 명. 정치인, 금융가, 기술 재벌, 그리고 날씨조차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것 같은 억만장자 가문의 후계자들. 그들 사이에 선 Jurgen은 지금껏 건조된 방주 중 가장 위대한 '포츄네이트 선'을 자신의 재산으로 건조한 인물이었다. 죽어가는 지구에서 인류를 탈출시킬, 보석으로 치장된 왕좌였다.
Jurgen은 유유히 지나가던 로봇 웨이터에게서 샴페인 잔을 받아 들고, 한 제약 재벌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동시에 Jurgen은 Marietta를 떠올렸다. 출입구 밖으로 쫓겨나 외투를 움켜쥔 채, 거센 산성비를 버티던 그 모습이. Marietta의 계좌에는 크레딧이 충전돼 있었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이 행성에서 진짜 가치 있는 건 지구를 떠날 수 있는 자격뿐이었으니까.
Jurgen은 어깨를 으쓱했다. 맞이할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이 시작됐다. 디바 Alania Mars가 직접 데려오지 못한 밴드의 녹음본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일 하나만은 끝까지 고집했다. 애틋할 정도의 의리지만, 결국 놓아주는 법도 배워야 한다. Alania는 Jurgen과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 소외된 삶 속에서도 오직 재능 하나로 추앙받게 된 소수의 인물 중 하나였지. 그래도 Jurgen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초대장을 보냈다. 나름 선행이었다. 세상은 우리가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말이지…….
지금의 Alania는 기량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Jurgen은 형식적인 인사 대신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노래를 감상했다. 냉동시켜서 출항할 때 데리고 갈까? 필요할 때 해동해서 노래하게 하는 게 좋겠지? 그게 가장 자비로운 방식일 거다. Alania가 쇳소리를 내며 목을 망치는 것보다는 말이다…….
귓가의 이어피스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Ganelon Liu였다 이 선체 모듈 밖에서 Jurgen이 굳이 시간을 내줄 인물은 많지 않았지만, 포츄네이트 선의 함장은 예외였다.
""말하게.""
""Barrendown 님."" Liu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시면 발사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해."" Jurgen은 양팔을 벌렸다. 이내 실내 음향 시스템을 통해 모든 손님의 어깨 너머에서 Jurgen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친구이자 동료 여러분. 큰 화면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모듈의 한쪽 벽이 열리며 발사대에 놓인 포츄네이트 선의 모습이 드러났다.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Jurgen은 모듈 벽에 손을 댔다. 화면 너머의 외부 선체와 연결되는 무언가를 느껴보고 싶었다. 밖에서 보면 위대한 방주는 그저 기능적인 구조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 경영 모듈은 금빛 장식과 호화로운 장식으로 가득했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난 수백 년의 사치를 고스란히 보존해두고 있었다. 모듈 다른 곳엔 수영장이 있었고, 갖가지 오락물로 채워진 웅장한 침실이 있었으며, 골프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18홀 코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절하는 다용도 실내 공간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했다.
시계는 20분 지점을 넘어서며 계속해서 숫자를 깎아내렸다. Jurgen은 다른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러 갔다. Alania Mars는 공연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러 나간 상태였다. Jurgen은 메시지를 보냈다. 함께하고 싶다고. 엔진이 점화되어 이 죽어가는 바윗덩어리를 떠나는 순간, Jurgen은 여자를 팔에 끼고 있으리라. Alania는 나중에 틀림없이 고마워할 것이다.
Jurgen은 누구보다 더 애썼으니까. 적어도 아랫사람들을 그렇게 부렸으니까. 자정 5분 전이 되자, 온갖 감상에 젖은 인간들이 벽 틈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이 문화는? 저 언어는? 이 인구 집단은? ""알 게 뭐야."" Jurgen의 대답이었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양심이라는 걸 떠올리는 건지. 이 경영 모듈에서 Jurgen이 보존하고자 한 것은 사람 그 이상이었다. Jurgen은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마흔 개의 가문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 행성의 운명을 설계해 온 존재들을. 음악과 문학, 문화를 보존하고 있었다. 원본 회화와 조각, 초상화, 유명 보석, 공룡 화석까지. 이곳에 Jurgen의 지구가 있었다. 비참한 현실을 모두 걸러놓은 지구의 축소판. Jurgen은 이 완벽함을 뭇별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
하지만 Alania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함선 시스템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말인즉슨 누군가가 이미 디바를 초대해 첫 춤을 함께 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모든 손님은 철저한 사생활 보호가 보장되어 있었으니까. 성가신 일이었다. Jurgen은 이륙 후 서열부터 제대로 확립하기로 마음먹었다. 타이머는 이제 막 5분을 넘겼고,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짜증은 사라졌고, 그 대신 소년 같은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리를 이루던 손님들은 Jurgen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화면 앞에 모여들었다. '포츄네이트 선'은 플랫폼 위에 엎드린 채 놓여 있었다. 네 개의 추진 폰툰은 노즐을 아래로 조정하고 있었다. 우주로의 진입은 굉음을 동반하는 로켓 추진식이 아닌, 과학이 지구의 집요한 중력을 제압하며 상승하는 모습이 될 터였다. 대기권을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엔진이 점화되고, 포츄네이트 선은 진정한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귓속에 신호음이 울렸다. ""Barrendown 님, 전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Liu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사 프로토콜을 고정했습니다. 손님들께 통제실 화면을 인서트 화면으로 보여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방주의 중심을 직접 보고 싶어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Jurgen의 생각에 중심은 항상 자기 자신이었지만, 동료 중엔 관심을 가질 이도 있을 수도 있으니 수락하기로 한다. 주 화면 모서리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함선 조종석의 비좁은 내부 모습이었다. Liu와 부조종사들이 수많은 자동화 시스템을 감독하고 있었다.
Jurgen은 웨이터에게서 다시 샴페인 잔을 받았지만, 냉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로봇만이 주변을 분주히 오갈 뿐이었다. 완벽해야 할 순간에 또 하나의 작은 결함이 포착됐다.
""저거, 노래 부르던 그 여자 아냐?"" 누군가 팔꿈치를 쳤고, 샴페인이 조금 튀었다. Jurgen은 Liu의 오른쪽 어깨 너머에 선 여자를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Alania처럼 보였다. 야회복 대신 비행복을 입었을 뿐.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여자는…….
Marietta였다.
Jurgen은 함장을 호출했다.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낯선 불확실함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그 순간 화면 속에서 추진기가 불을 뿜었고, 화면 전체가 하얀 섬광에 잠겼다. 주변의 거물급 손님들이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함선 전체가 떨리며 상승을 시작했다.
""믿기지 않지?"" 누군가 술기운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선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도 않아!""
Jurgen은 화면을 바라보며 이상한 착시를 경험하고 있었다. 포츄네이트 선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함선 중앙은 여전히 플랫폼에 붙어 있었고, 상부 구조와 승무원 구역, 엔진만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Liu 함장!"" Jurgen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가슴을 죄어오는 이 압박감은 이륙의 중력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Liu는 정중하게 응답했다. ""곧 궤도 모듈과의 도킹에 들어갈 예정이라, 더 이상 통신을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어떤 궤도 모듈 말인가?""
""거주 모듈입니다. 총 3,960명의 수용 인원을 자랑하죠. 이 파티에 참석한 분들 한 사람을 대신해 거의 백 명이 들어갈 수 있더군요. 공간을 진심으로 잘 활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효율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죠.""
화면 속에서 포츄네이트 선은 사라졌고, 남은 건 지상에 고립된 커다란 경영 모듈뿐이었다. Jurgen은 어느새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고, 조여드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포츄네이트 선의 승무원과 승객을 대표해, 오래도록 평안하시길 빕니다."" Liu가 쾌활하게 말했다. ""지구에서의 삶을 즐기십시오, 어르신.""
Jurgen의 주위를 감싼 사람들이 하나둘 눈치챘고, 파티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