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Torrance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전부 수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비살상 진압 장비를 갖춘 보안 인력들.
예비 부품
"할당기가 나갔어."" Kendall이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Kendall의 목에 걸린 무전기에서 Nabil7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Nabil7은 바로 옆 구획을 떠도는 카메라 드론을 조종 중이었다. 구획은 아래쪽 3D 프린터 설비와 연결돼 있었다. 혹은 생명유지 장치일 수도 있었고. 둘 중 무엇인지 확실히 하기 전엔 전원을 끄는 행동은 피하는 게 좋았다.
""할당기."" Kendall은 휴대용 디스플레이를 열어 도면을 띄웠다. ""뭘 할당하는 건데?"" 처음 있는 일도 아니지만, 방주 '버려진 신부'의 설계도는 실제 패널 뒤에 있는 구조와 또 맞지 않았다. 당시 작업팀은 자재가 부족했고, 임기응변으로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그 당시라는 것도 벌써 백 년 전 일이었고, 3세대 엔지니어인 Kendall이 물어볼 만한 사람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 근데 디지털 아키텍처에 필수적인 부품이야. 할당기가 맛 가면, 시스템 전체가 맛 가는 거지.""
""그럼 전체 경로를 다 다시 짜서 우회하든지, 아니면……""
Nabil7이 자신의 화면에 무언가를 표시했다. ""여기 예비 할당기 하나 있네.""
""그건 뭘 할당하는데?""
""251번부터 273번 냉동 수면 포드까지 전달되는 영양분."" Nabil7이 말했다. ""지난번 일…… 이후론 필요 없지.""
""지난번, 그렇네."" 살려낸 사람은 일곱 명뿐이었다. 251번부터 266번까지는 이미…… '변질됐다'가 Nabil7이 선택한 표현이었다. 그 이후 265번부터 273번까지의 포드는 인접 구역에 연결됐고, 고장 난 포드와 연결된 시스템은 마음대로 써도 되는 상태였다.
""그걸로 바꿀게."" Kendall이 Nabil7에게 말했다. 합선이 난 할당기를 고장 난 냉동 수면 포드에서 떼어낸 멀쩡한 할당기로 교체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하면 이 장치는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겠지만, 더 넓은 시스템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리라. ""다음 작업은?""
""407번부터 463번까지 냉동 수면 포드 시스템 점검. 전력 변동이 발견되고 있어.""
""거기 방금 점검했잖아.""
""안 했어."" Nabil7이 말했다.
""우리가 거기 점검한 건……""
""8년 전이지. 내 전임자가.""
Kendall은 패널을 연 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은 자동적으로 움직이며 할당기를 외장재에서 분리하고 있었다. 3년? 시스템별로 8년마다 점검할 필요도 없게 설계되어 있었는데. 애당초 계획은 문제가 될 수 있는 핵심 시스템만 골라 10년 주기로 엔지니어를 해동해 점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수시로 땜질만 하러 불려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마지막으로 냉동 수면에 들어간 게 언제였지?""
""29년 전."" Nabil7이 대답했다. 수사적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냉동 수면 포드 보고 정비 일정 잠깐 쉬는 김에 의무실로 와."" 정기 검진 일정이 한참 밀려 있어.""
""나 괜찮아."" Kendall은 할당기를 비틀어 분리해 냈다. 그 옆 패널을 열면서 이제 이런 부품들은 그냥 떼어내고 다시 안 끼워도 되지 않나 싶었다. 어차피 다음번이 또 올 테니까. Kendall은 괜찮지 않았다. 피로는 항상 가시질 않았고, 복통은 잦았으며, 손은 반복 작업 때문에 욱신거렸다. 고관절은 쑤시고, 시력도 나빠졌다. 그래도 아직 공식적으로는 Kendall 1호였고, 그 점에 있어서는 Nabil7보다 훨씬 나았다.
냉동 수면 포드 점검은 Kendall의 작업 목록에 열아홉 개나 되는 새 항목을 추가했다. Kendall은 차가운 투명 플라스틱 너머로, 조용히 잠들어 있는 얼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망각의 잠. 이들은 언젠가 깨어나 어딘가의 낙원 같은 세계 위로 첫발을 내딛게 되겠지. 수십 년간 자신들을 우주에서 살려낸 사람들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지금 Kendall은 문어에게 검진을 받고 있었다. Nabil7은 물로 채워진 관 안에 떠 있었고, 선체 곳곳을 연결한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 승무원이 갈 수 없는 구역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 외의 작업은 Nabil7 자신의 촉수처럼 원격 수리 드론을 조종해 처리할 수 있었다. 현재 유일한 문제는 수명이었다. Kendall이 처음 해동됐을 때, 함께 일했던 건 Nabil4였다.
""자, 의사 선생. 나쁜 소식부터 알려줘."" Kendall이 말했다.
""췌장 기능 전면 붕괴 임박."" 무전기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는 Nabil7이 자신의 촉수로 수동 입력한 문장을 번역한 것이었다. Kendall은 웃으며 이어질 농담을 기다렸다. 그런 건 없었다.
""잠깐, 아니."" Kendall이 말했다. ""아니, 고관절이랑 손 얘긴 했잖아…….""
""그 얘기 계속할 거야, 아님 췌장으로 넘어갈래?"" Nabil이 물었다. ""외과의사 해동 절차는 시작했어. 근데 너 대신할 사람은 아직 활성화 못 해. 난 그 권한이 없거든.""
""난 그냥 대체될 수 없어."" Kendall이 말했다. ""앞으로도 몇십 년은 남았고. 난……"" 뭐지? '젊다'는 아닐 테고. 지금 끝낼 준비도 안 됐다. ""후임 인수인계할 시간도 없어. 밖이 어떤지 알잖아. 설계랑 실제는 완전히 달라. 난……"" Kendall은 머리를 가리켰다. ""이 안에, 이 함선의 모든 작동 방식이 들어 있어. 5년을 써서 문서로 남겨도 겉핥기밖에 안 돼. 살면서 쌓은 경험이야, Nabil. 그냥 여드름 난 애한테 다 떠넘기고 끝낼 순 없다고."" 뭐 고장 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걸.""
Nabil7은 한동안 Kendall을 바라보더니, 팔을 여러 개 둥글게 오므렸다 펴며 인간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전혀 인간답지 않은 몸에서 나온 아주 인간적인 몸짓이었다.
외과의는……. 뭐, 버려진 신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경악했다. 그러고는 이 거대한 선박이 Kendall 같은 기술자 몇 명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나서 또다시 경악했다. 지금은 생체 이식 가능한 췌장을 프린트하기 위해 의학용 프린터와 씨름 중이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50년째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었고, 만들어지는 물질은 췌장이 아니라 이상한 덩어리뿐이었다. 그래서 Kendall은 긴급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의학 프린터를 고칠 부품을 뜯어오고 있었다. 다만 부품을 떼어낸 장비가 내일 작업 목록 제일 위에 올라와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전부 망가져 가고 있어."" Kendall이 무전기를 통해 Nabil7에게 말했다. ""우리도 다 망가지고 있고.""
""우린 버틸 수 있어."" 문어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그 근거가 뭔데?""
""다른 선택지를 찾아봤는데 없더라고. 그럼 그냥 하는 수밖에 없잖아."" Kendall은 Nabil이 농담을 한 건지, 아니면 진지하게 말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의학 프린터를 겨우 수리하고 Kendall은 그 자리를 의사에게 넘기고, 신부의 화물 목록을 띄웠다. 검색어를 바꾸며 이리저리 탐색했고, 다른 화면에는 자신의 의무 기록이 열려 있었다. 이리저리 돌려막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계를 맞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건너편에서 의사가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의료 프린터의 진단 결과는 모두 양호했지만, 정작 출력되는 건 장기 대신 찐득한 폐기물뿐이었다. Kendall의 몸속에서 망가져 가고 있는 장기를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였다.
마지막 검색. 일치하는 결과 목록. ""의사 양반.""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젊은 얼굴엔 좌절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Kendall에겐 마치 거울 속의 얼굴 같았다.
""다 준비해. 자동 수술 시스템은 Nabil한테 맡겨. 원격 조작엔 능하니까. 살균 다 하고 준비해. 금방 돌아올게.""
이쯤이면 의사도 짐작했으리라. 자신들의 상황을 의료인의 맹세에 비추어 보았고, 결국 맹세가 흔들리는 걸 느꼈겠지.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Kendall은 419번 냉동 수면 포드 앞에 서 있었다. 안에는 Eleanine Hegg라는 통계학자가 잠들어 있었다. 나이는 스물여덟 살. 취미는 달리기. 시집도 한 권 냈다. 버려진 신부 탑승에 대해 눈을 빛내며 기대감을 드러내는 영상도 있었다. 그리고 Kendall에게 완벽히 맞는, 아주 건강한 췌장을 갖고 있었다. 419번 포드는 황색 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언제든 고장이 날 수 있는 포드였다.
Kendall은 자기 췌장을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언제든 멈출 수 있었다. Kendall은 자신이 떠맡은 고장 목록을 떠올렸다. 이 낡은 방주의 변칙적인 시스템을 누군가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키워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를 생각했다.
""의사가 준비됐대."" Nabil7의 말이 들려왔다.
Kendall의 눈앞에 Eleanine Hegg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Kendall은 포드 옆 패널을 열고, 도구를 꺼냈다. ""가는 중이야."" Kendall이 말했다.
